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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나' 답게 살겠습니다

기사승인 2019.04.30  16: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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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애 추구하는 청년들 '나나랜드' 번져

#의정부시에 거주하는 25살 지혜씨는 평소 레깅스를 즐겨 입는다. 몇 년 전만 해도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녀는 “레깅스는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만 입는 거라 생각했는데, 최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자고 생각하면서 자주 입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노원구에 거주하는 29살 재희씨는 더 이상 아침밥을 포기하며 아이라인을 그리지 않는다. “워낙 눈이 작아 어렸을 때부터 눈화장을 목숨처럼 생각했는데, 어차피 이건 진짜 내 눈이 아니라고 생각한 후로는 눈화장을 하지 않는다.” 작은 눈이 콤플렉스였지만, 자신의 매력이라고 생각을 바꾸니 오히려 전보다 자신감이 생겼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다. 예쁜 외모, 좋은 학교, 번듯한 직장, 넓은 집에 목숨을 걸며 끊임없는 비교와 좌절을 반복한다. 이런 가운데 반가운 단어가 주목받고 있다. 바로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일컫는 신조어 ‘나나랜드’ 이다. 나나랜드에 사는 사람들(나나랜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기준보다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고,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나’의 기준이다. 김난도 교수와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발표한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도 올해의 10가지 키워드 중 하나로 ‘나나랜드’를 소개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요즘, ‘나나랜더’ 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자.

스스로 아름답다 여기세요. ‘아름답게 보이려’ 하지 말고

온라인 뉴스 에디터, 애플리케이션 홍보 담당 등을 거쳐 8만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로 활동 중인 33살 ‘미내플’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나나랜더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학창시절 외모로 고민이 많던 그녀는 미(美)의 기준을 넓힌 후 스스로의 모습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넓고 큰 얼굴형이 콤플렉스여서 문희준처럼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다 가리고 다녔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죠.(웃음) 이영애씨처럼 예쁘고 싶었지만, 사회가 정한 아름다움에 저를 맞추는 대신 ‘미의 기준’을 넓히기로 했어요.”

이때부터 자신만의 롤모델을 찾기 시작했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던 모델 김동수(현 동덕여대 모델학과 교수)의 인터뷰가 생각의 전환에 큰 도움이 되었다. “김동수씨가 교수로 등용된 직후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미의 기준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각자의 개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여러 차례 역설하셨어요.” 다양한 국적, 인종의 여성들을 보며 꼭 마르지 않아도, 주름이 있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스스로 예쁜 외모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미의 기준을 유연하게 넓히고 나노 단위로 외모를 들여다보는 시각에서 벗어났어요. 대중적인 미의 기준은 어디에나 있어요. 그 틀이 나와 맞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나와 맞는 기준을 찾고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움은 이 세상 여성의 수만큼 다양하니까요.” 외모가 자신을 드러내는 원초적 매체이니만큼 무엇보다도 ‘나’라는 사람과 딱 맞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는 미내플은 시야를 넓혀 자신의 매력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획일화된 ‘미(美)의 기준’ 자체가 모순적

제이스타일 쇼핑몰을 시작으로 현재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활동중인 쑨에이(출처 제이스타일 블로그)

 

페이스북부터 시작해서 블로그, 인스타그램에 일상 패션을 올렸던 26살 전선아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서포터즈 제의를 받았고, 활동 기간이 끝난 후 쇼핑몰에서 스카우트를 받아 ‘쑨에이’로 본격적인 플러스 사이즈 모델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모델’이라고 저를 소개하기가 부끄러웠어요. 제가 모델이라고 하면 ‘네가?’라며 다 비웃었거든요.” 플러스 사이즈 모델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만큼 상처도 많이 받았다. 악플로 인한 고소 경험까지 있을 만큼 심한 마음고생도 했다. 하지만 상처 주는 시선으로부터 날 보호하지 말고, 상처 주는 시선 자체를 없애자고 다짐했다. 나를 욕하고 무시하던 건 사람들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그때부터는 모델 일이 더 즐거워졌다.

“내 삶은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아요. 내가 만족한다면 그걸로 성공한 인생이거든요. 몸도 마찬가지예요. TV에 나오는 마르고 예쁜 몸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세상에는 다양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나’에 대한 관심이 곧 소비의 변화로 이어져

에이리 2018 캠페인(출처 : 에어리 홈페이지)

‘나’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며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정형화된 미(美) 대신 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되면서 신체적 콤플렉스를 당당히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몸무게나 체형에 상관없이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가 주목받고 있다. 이 운동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움직임으로, 뚱뚱한 몸, 장애가 있는 몸, 성적 지향과 맞지 않은 몸 등 모든 몸을 긍정하자는 운동이다. 이는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고 ‘외모도 스펙’이라는 편향된 사회적 시선에 의해 더 이상 자기 정체성이 훼손되도록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이러한 영향은 패션 광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대표적 사례로 미국의 속옷 브랜드 ‘에어리(Aerie)’는 ‘당신을 바꾸지 마세요. 당신의 브래지어를 바꾸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2014년부터 포토샵을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체형과 인종의 일반인 모델을 내세운 ‘진짜 몸매’ 캠페인을 실시했고, 2018년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38%가량 증가했다.

이러한 흐름은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남자는 180cm 이상이어야 한다.’ ‘ 노인은 아름답지 않다.’ 등의 각종 미의 규격에도 균열이 가고 있다. 도봉구에 거주하는 27세 남성 H씨는 “중학생 때부터 깔창은 필수였는데 최근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더라. 비록 키가 좀 작아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나를 인정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깔창을 포기하니 발도 더 편하더라.” 라고 전했다.

 

웰컴 투 ‘나나랜드’

 나나랜드가 추구하는 이상은 ’사회적 기준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취향, 생각, 기준을 주체적으로 좇는 삶‘이다.

 이창미 이화여대 심리학 박사(현 영유아 센터장)는 “예전에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경제체계가 진행되어 집단의 관습과 규범이 매우 중요했지만, 현대사회는 개인의 능력과 개별성을 기반으로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민주주의 발전에 의한 개인의 권리가 중요시된 사회이므로 개인 외 다양성이 존중되게 된다.”라고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그는 "’나나랜드‘ 의 삶을 살 때 중요한 요소인 ’건강한 자존감‘을 언급하며 자신을 중심에 두는 것과 자기중심적인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건강한 자존감은 자존심과는 구별된다. 자존심은 상대나 환경에 의해 쉽게 상처받는 상대적 개념이라면 건강한 자존감이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소중함과 더불어 타인의 존재를 존중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19’를 통해 온전한 나나랜드는 ‘자기 삶에서 남을 배제하지 않는 사람’이 만든다고 설명한다.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단점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모습을 신뢰한다.  ‘궁극의 자기애’가 발휘될 때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한 수용력 또한 높아지고 사회의 획일화된 규범과 관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부연한다. ‘나’에 대한 깊은 이해, 건강한 자존감의 확립과 더불어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는 ‘나나랜더’들은 오늘도 늘어나고 있다. 

 하정은 김선구 학생기자

하정은 김선구기자 webmaster@kkobb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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