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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스러져간 당신의 희생을 기억합니다

기사승인 2020.10.10  11: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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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운동가 故 전태일 열사 50주기

1970년 11월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지켜 달라고 외치며 분신했던 故 전태일 열사의 죽음이 올해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 이후 50년, 한국 노동운동은 전태일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대한민국의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쓰였고 그만큼 어린 나이에 학업을 포기한채 일터로 뛰어드는 사람이 많았다. 전태일 또한 그랬다.

어려운 가정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신문팔이, 구두닦이, 삼발이장사 등 잡일들을 하며 살아온 전태일에게 재단사라는 직업이 주어졌지만 그가 일하게 될 근로환경은 참담 그 자체였다.

창문이나 환풍기도 없는 곳에서 하루 15시간씩 일해 고작 커피 한 잔 값을 벌어가는 열악한 노동 환경이 전태일은 부당하다고 느꼈고 나라에서 정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에 크게 반발했다. 당시 근로기준법은 하루 최대 8시간 근무에 일주일에 한번은 휴일이 있어야 하며 모든 근로자에게 건강진단을 받게 해준다는, 현실 속 상황과는 매우 다른 얘기였다.

그렇게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지켜 달라는 민주노동운동을 시작했지만 근로조건이 개선되기는 커녕 사업주의 횡포와 노동청의 외면을 받았다.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른 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나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라는 말과 함께 희생하였다.

전태일의 죽음으로 사회가 노동문제에 대해 관심을 높이기 시작했고 많은 근로환경들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의 희생을 두고 2009년 발행된 인권변호사이자 민주화 운동가로 꼽히는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에는 신영복(성공회대 석좌교수)의 말을 인용해 “전태일은 횃불이었다”고 표현한다. “사회의 가려진 얼굴을 들추어낸 횃불이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횃불이다.”라고 말했다.

 전태일은 스물 두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사회의 감춰진 얼굴들을 들추어냈다. 그의 희생정신으로 지금의 노조가 존재하며 우리는 개선된 근로환경을 누리고 있다.

 노동운동에 한 획을 그은 故 전태일의 5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2019년 4월 종로구에 전태일 기념관을 개관한데에 이어 2020년 6월 17일 전태일 50주기 추모 6차 캠페인이 서울 종로구 전태일 다리에서 진행되기도 했다. 그의 희생 뒤로 5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전태일’을 기억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webmaster@kkobbinews.com

<저작권자 © 꽃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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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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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은진 2020-12-07 15:21:43

    모두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일은 정말 큰 결심이 있지 않고서야 힘든 일인거 같습니다. 특히나 자신의 죽음을 통해 모두의 이익을 위했던 전태일 열사가 더욱 대단히 느껴지는 지금인거 같습니다. 노동자의 현재도 부당함 없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전태일 열사의 희생으로 지금까지 많은 변화를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전태일 열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보답하고 기억해야합니다. 당신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삭제

    • 최현 2020-11-30 14:59:31

      전태일 열사가 한국 사회의 노동 문제에 대해서 온몸을 바쳐 지켜내고자 했던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부르짖으며 세상을 떠난지 50주기가 되기 몇 주전, 저는 우연히도 전태일평전에 대한 조별 발표를 맡게되어 책을 완독하였는데요. 당시 노동 환경은 너무나도 참혹하였습니다. 고강도의 업무와 무자비한 근로시간, 환기조차 되지않고 빛 한점들어오지않는 작업장, 눈 바로 앞에 각자의 작업대를 비추는 백열전구는 그들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들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듯 우리 역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이어나가야겠습니다삭제

      • 김승현 2020-11-30 14:10:51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생활하는 학생으로서 현재의 법으로도 최대의 보호를 받고있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보호조차 없던 시절 전태일 열사의 죽음으로 사회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고 근로환경을 개선한 덕분에 안전장치가 생길 수 있어 다행입니다.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싸워 왔을지 다음 대를 위해 희생을 감행하셨을지 감히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삭제

        • 최가온 2020-11-30 00:25:06

          그때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보다 편한 삶을 살고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아르바이트 조차 최저시급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게 되면 신고를 하는 시대인데, 비교도 못할만큼의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 속상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당시 전태일님의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말도 안 되는 대우를 받으며 노동을 하시는 분들이 계셨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그러한 용기가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반드시 희생이 있어야만 개선이 된다는 점이 정말 분하고 속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희생과 용기를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삭제

          • 김수정 2020-11-29 16:34:33

            우린 노동 후 정당한 금전적인 대가를 받으며 근로기준법에 의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는다. 이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점에선 당연한 순리로 여겨진다.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는 이 당연한 것이 지켜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젊은 한 청춘을 횃불로 만들었다. 그 횃불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빛을 받으며 뜨겁게 타올랐고,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는 용기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이는 누군가의 처참한 희생이 있어야만 점차 변화되는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보여줬고 안타깝게도 그 문제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희생 없이 변화하는 세상은 언제쯤 올까?삭제

            6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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